조선 시대 - 조선의 정치 - 현종~정조

BACK
광고배너
 
현종 -예송논쟁
  • 효종이 사망하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 대비 복상 문제에 대해 송시열 등의 은 1년간 상복을 입는 기년복을, 은 3년 복을 주장하는 기해예송이 일어났다.
  • 효종비가 사망하자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은 9개월을, 은 1년을 주장하는 갑인예송을 일어났다.
  • 현종은 기해예송 때에는 을 주장을 수용하였고, 갑인예송 때에는 의 주장을 수용해 갑인예송 후 이 정국을 주도하였다.
숙종 – 환국 정치
  • 숙종이 집권 붕당을 전격적으로 교체하는 국 정치를 펼치면서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 추세가 나타났다.
  • 숙종 때 남인 이 자신의 잔치에 궁중의 물품인 유악을 임금의 허락없이 가져간 문제로 환국이 발생하였다.
  • 숙종 때 경신환국으로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되고, 이 정국을 주도하였다.
  • 숙종 때 경신환국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잡은 은 남인 처벌 문제로 으로 분열하였다.
  • 숙종 때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명호 문제로 환국이 발생하였다.
  •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원자 명호를 정한 것에 반대한 송시열 등 이 축출되었으며, 인현왕후가 되었다.
  •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으며, 이 권력을 장악하였다.
  • 숙종 때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하고 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.
  • 숙종 때 청과의 경계를 서쪽으로는 압록강,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확정하고 백두산정계를 건립하였다.
  • 숙종 때 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에도 막부로부터 문서로 확인받았다.
  • 숙종 때 금위을 설치하여 5군영 체제를 완성하였다.
  • 숙종 때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.
  • 숙종 때 공납의 기준을 토지 결수로 바꾼 대동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.
경종
  • 경종은 희빈 장씨의 아들로 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.
  • 경종은 이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하자 신임사화를 일으켜 을 처형하였다.
영조
  • 영조가 즉위하자 소론 강경파 는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에서 난을 일으켰다.
  • 영조는 붕당 간의 대립이 격화되자 과격한 인물을 배제하고 온건한 탕평파를 중심으로 정국이 운영하는 론 탕평을 추구하였다.
  • 영조는 탕평책으로 붕당의 근거지인 을 정리하고, 재야의 지도자인 의 존재를 부정했으며, 이조 의 권한을 축소하였다.
  •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성균관 입구에 탕평를 건립하였다.
  • 영조는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이고자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을 실시하고,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결작을 징수하였다.
  • 영조 때 우리나라 역대 문물을 정리한 “동국문헌비고”가 편찬되었다.
  • 영조 때 “속대”을 편찬하여 법전 체제를 정비하였다.
  • 영조 때 최초로 100리 척을 사용한 동국지도가 제작되었다.
정조
  • 정조는 당파의 옳고 그름을 명백히 가리는 론 탕평을 추구하였다.
  • 정조는 창덕궁 비원에 학술 연구 기관인 규장을 설치하였다.
  • 정조는 이덕무, 유덕공,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의 학자들을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하였다.
  • 정조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문신들을 재교육하는 초계문신를 시행하였다.
  • 정조는 친위 부대인 장용을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.
  • 정조는 신해통공을 통해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난전을 폐지하였다.
  • 정조 때 진산사건을 계기로 신해박해가 일어났다.
  • 정조는 수령이 군현 단위의 을 직접 주관하게 하여 수령의 권한을 강화하였다.
  • 정조 때 “대전통편”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.
  • 정조 때 대외 관계를 정리한 “동문휘고”와 재정 업무와 관련된 사례를 모아 “탁지”를 편찬하였다.
  • 정조 때 수원 화성 건설에 정약용이 설계한 거중가 사용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