근대 - 근대의 정치 - 흥선 대원군 집권기

BACK
광고배너
 
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
  • 흥선 대원군은 대외적으로 서양 세력의 침략적 접근을 막고자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쳤다.
  • 1866년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 신도들을 처형한 병인박해가 일어났다.
  • 1866년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미국 상선 제너널 셔먼호를 평안감사 박규수와 평양 군민들이 불태워 침몰시켰다.
  • 1866년 프랑스군은 병인박해를 빌미로 병인양요를 일으켰다.
  • 병인양요 때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.
  •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도 외규장의 도서와 문화재를 약탈하였다.
  • 1868년 독일 상인 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.
  • 1871년 미군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신미양요를 일으켜 강화도 초지진을 점령하였다.
  • 신미양요 때 재연 장군이 성보에서 결사 항전하였다.
  • 신미양요 이후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를 건립하여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밝혔다.
  • 등의 위정척사파는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을 하였다.
흥선 대원군의 대내 정책
  • 흥선 대원군은 대내적으로 권 강화생 안정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비변를 혁파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 경복을 중건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 비용 마련을 위해 납전을 징수하고 백전을 발행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양반들의 묘지을 벌채하여 반대에 부딪혔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국가 재정 확보와 양반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만동를 없앴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“대전회통”, “육전조례” 등의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숨겨진 토지의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사업을 실시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해 양반에게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를 시행하였다.
  • 흥선 대원군은 환곡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사창를 실시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