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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항기에 통상 개화론을 주장한 개화파와 척화 주전론을 주장한 위정척사파가 대립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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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화파는 청의 양무운동에 영향을 받은 온건 개화파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받은 급진 개화파로 분화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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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건 개화파는 동도서기론에 사상적 바탕을 두고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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급진 개화파는 문명개화론에 사상적 바탕을 두고 적극적 개혁을 추구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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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옥균, 박영효, 서재필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갑신정변을 일으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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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신정변 당시 개화당 정부는 청에 조공하는 허례 폐지, 인민 평등 권리 제정, 호조에서 재정 일원화, 토지세 개편을 위한 지조법 개혁, 혜상공국 폐지 등 14개조 개혁 정강을 발표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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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신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 주동자들이 해외로 망명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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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신정변의 결과로 일본과 한성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에 배상금을 지급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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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신정변의 결과로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에서 군대를 철수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