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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6년 대한 자강회는 입헌 군주제를 지향하였으며, 전국에 지회를 두고 월보를 발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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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서상돈, 김광제 등의 발의로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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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고종은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늑약 체결의 부당함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자 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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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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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대한 자강회는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통감부에 의해 해산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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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정미 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어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이 정부의 차관으로 부임하는 차관 정치가 시작되고, 군대가 해산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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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고종의 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난 정미의병은 해산 군인의 참여로 전투력이 향상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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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7년 정미의병은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13도 창의군을 창설하고 각국 영사관에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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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8년 13도 창의군은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해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까지 진출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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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8년 일제는 토지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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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9년 일제는 기유각서를 체결해 대한 제국의 사법권을 박탈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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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9년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국내 의병 세력은 만주, 연해주 등으로 이동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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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9년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청과 간도 협약을 맺어 안봉선의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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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9년 정미의병 참모중장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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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0년 일제는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대한 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고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