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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60년대 이항로, 기정진 등의 위정척사파는 척화주전론을 주장하며,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지지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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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70년대 최익현은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강화도 조약에 반대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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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0년대 이만손 등의 영남 유생들은 영남만인소를 올려 조선책략을 비판하고 미국과의 수교를 반대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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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대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은 유생들이 주도하였고, 유생 출신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이 충주성을 점령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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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대 을미의병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으로 대부분 자진 해산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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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하여 첫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과 최익현, 민종식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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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고종의 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난 정미의병은 해산 군인의 참여로 전투력이 향상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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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정미의병은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13도 창의군을 창설하고 각국 영사관에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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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13도 창의군은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해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까지 진출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