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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0년대 임오군란 이후 정부가 박문국에서 발행한 한성순보는 정부의 정책을 알리는 관보적 성격을 지녔으며, 순 한문 신문으로 열흘마다 발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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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0년대 갑신정변 이후 한성주보는 일주일 주기로 발행하였으며, 최초로 상업 광고를 게재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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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대 대한 제국 시기에 독립신문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최초의 민간 신문이었으며, 순 한글 신문으로 외국인이 읽을 수 있도록 영문판도 함께 발행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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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대 대한 제국 시기에 황성신문은 보수적 유림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으며,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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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대 대한 제국 시기에 제국신문은 서민층과 부녀자를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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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대 대한 제국 시기에 독립신문은 독립협회 해산 후 폐간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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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기에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주축이 되어 발행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사전 검열을 받지 않아서, 의병을 호의적으로 보도하고 일제에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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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기에 만세보는 천도교에서 발행한 국한문 혼용의 신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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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기에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신문으로 제국신문, 황성신문, 대한매일신보 등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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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0년대 애국 계몽 운동기에 일제가 신문지법을 제정하여 제국신문, 황성신문, 대한매일신보 등의 국내 언론을 탄압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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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0년 국권 피탈 후 대한매일신보는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