삼국·남북국 시대 - 고대의 정치 - 발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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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해 고왕 해설보기
  • 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지린 성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.
발해 무왕 해설보기
  • 발해 무왕은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.
  • 발해 무왕은 대문예로 하여금 수 말을 정벌하게 하였다.
  • 발해 무왕은 문휴를 보내 산둥반도에 있는 당의 를 공격하였다.
  • 발해 무왕은 과 신라와는 대 관계를 유지하고, 일본과는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
발해 문왕 해설보기
  • 발해 문왕은 대흥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.
  • 발해 문왕은 수도를 중경 현덕부에서 용천부로 옮겼다.
  • 발해 문왕은 선 관계를 유지하며, 당의 문물을 수용하였다.
  • 발해 문왕은 당의 제도를 참고하여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정비하였다.
  • 발해 문왕은 신라를 통해 신라와 교류하였다.
  • 발해 문왕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고구려의 후예임을 내세웠다.
  • 발해 정효 공주 묘비에 문왕을 이라 표현하였다.
  • 발해 상경성은 당의 장안성을 본떠 만든 주작대로가 있었다.
  • 발해 상경성의 궁전 터에서 장치가 발견되었다.
발해 선왕 해설보기
  • 발해 선왕 때 철리부 등 동북방 을 복속시키고, 지방에 진출하는 등 최대 영토를 확보하였다.
  • 발해 선왕 때 전국에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다.
  • 발해 선왕 때 전성기를 이루어 당으로부터 해동성이라 불렸다.
발해의 멸망 해설보기
  • 발해는 거란이 세운 요의 침입으로 926년에 멸망하였다.
발해의 고구려 문화 계승 해설보기
  • 발해의 유적, 꽃무늬 기와, 불병좌상 등의 유물을 통해 발해가 고구려 문화를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.
  • 정혜 공주 묘는 모줄임 천장 양식의 굴식 돌방무덤으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.